집은 제주시에 있다. 고로 공항에 밤늦게 도착하거나,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야하는 친구들이 짧게 머물게 되는 일이 많았다. SNS 디엠이나 문자, 전화로 급하게 연락이 오면 나는 걱정부터 했다. 같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갑자기 벌레가 나오면 어떻게 하지? 너무 추워서 감기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더 벌레를 덜 무서워하는 친구나 배낭 여행의 경험이 많아 자신의 침낭을 챙겨 온 친구들이 연락이 오면 내심 안심 하기도 했다. 나는 대신 맛있는 것을 대접하리라는, 그런데 무엇을 대접해야 되냐는, 요리 실력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동안 친구들은 집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신기한 집이다!' 두 번의 계단을 오르고 세 번 문을 열면 집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집. 그리고 안에는 또 다른 계단이 있는데, 작은 다락과 타일 색이 예쁘다며 친구들이 목소리를 높이면 나는 괜히 직접 만든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썹을 올리며 웃었다. 그치? 

  친구들이 오면 두문불출하던 좁고 긴 부엌으로 자주 들어가 가스 불을 켰다. 서귀포에서 4개월 동안 하숙 생활을 하며 자신을 돌봄 경험은 이때 빛을 발했다. 근처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보면 떨이 채소가 싸게 나왔는데, 큰 장보기 가방을 들고가 저녁마다 장을 보고 비건 요리 유튜브 <베지곰>에서 레시피를 하나하나 해보며 먹었다. 하숙 생활 동안 같이 지내는 사람들도 비건고추장찌개와 푹 삶아 부드러운 감자와 고구마가 들어간 닭 없는 찜닭을 먹었다. 당근을 싫어하던 사람들도 익힌 당근의 식감이 좋아졌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자신을 먼저 돌보려고 시작했던 일이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먹일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들을 때마다 이런 빛이 내 안에 있었다는, 힘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았다. 원가족의 가스라이팅에 나는 나약하며 가족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동조했다. 하지만 나는 서귀포에서 4개월 가량 스스로를 돌보았고 그 경험으로 제주시에 집을 얻었고, 구석구석 검은 먼지가 쌓인 창틀을 닦았으며, 함께 사는 고양이 찰랑이가 좋아하는 햇빛이 아낌 없이 들어오는 이 집에 도착했다. 나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자기 돌봄도 완벽하면 무슨 재미일까. 설거지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 고질적인 습관이라면, 친구들이 밥을 먹고 그 가사 노동을 했다. 자연스레 바퀴벌레가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러 나타나는 일이 줄었다. 어느 친구는  나물을 주려고 잠시 들려서는, 고장난 청소기 상태를 알아차리고 바닥을 꼼꼼히 닦아주었다. 다음 날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는 친구가 비건 김치를 나눠주며 전기 난로와 전기 장판을 보내주었고, '청소 했네?'라며 되려 날 칭찬했다. 그런 날이면 나는 꿈을 꿨다. 작은 은하수에 별들과 함께 흐르고 흐르며 바다로 이어지고, 다시 비처럼 쏟아져 지구로 도착하는 순환의 꿈이었다.

  위에 말했듯이, 가난하기 때문에 참는다는 말은 오해임이 분명했다. 우리는 참지 않았다. 1월의 추위를 한달 간 함께 버틴 친구는 면역력이라도 높이자며 알배추 스테이크를 만드는 등 일에 지쳐 돌아온 나에게 되려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와인을 잠시 마시러 온 친구는 비누 받침대 없이 바닥에 눌러 붙어가는 비누를 보고 빨간 실을 짜서 비누망을 만들어주었다. 그 외에도 횡하던 벽지와 냉장고에는 친구들이 다녀가며 남기고 간 메모와 편지가 알록달록 붙었다. 시간이 지나 10월에 머문 친구는 추위를 대비하자며 보온 물주머니와 수면 양말을 준비할 것이나 자기가 안 쓰는 난방 텐트가 있다며 주고는 떠나기 전에 단열재 뽁뽁이로 열지 않을 창문을 꼼꼼하게 덮어 주었다. 몇 번이고 대비하며 터득해낸 삶의 지혜를 배워간 나날들. 고단했기에 세심하고 능숙해진 움직임들.

  나는 걱정이 줄었다. 세상이 어찌되든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각자도생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혈연가족중심주의로 원가족 내의 폭력을 묵인하는 사회에서, 벽을 타고 들려오는 비명에 침묵하는 사회에서, 집 안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했던 사회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글을 쓰던 고개를 들어 오고 간 흔적을 가만 바라본다. 각기 다른 글씨체와 그림과 인생네컷에서 옹기종기 찍은 얼굴들. 작은 왕국을 오갔던 생활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