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에 린다 언니네 집에서 언니의 지인들과 훠궈를 먹었다. 튀르키예 사람과 결혼해서 부르사에 살고 있는 중국 여성들의 모임이었는데,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가산점과 한국인 친구가 없다는 동정표를 얻어서 나도 초대 받았다. 언니가 직구해서 장만했다는 신식 훠궈 냄비에 재료들을 넣고 정신 없이 먹다가 속도가 더뎌질 즈음, 한 언니가 내게 한국이 그립지 않냐고 물었다. 이번 여름에 짧게 다녀 오기도 했고 딱히 그립지 않다고 답하자 언니들은 아직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언니들도 5년차까지는 중국이나 튀르키예나 사람 사는 곳인데 다 똑같지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고향이 너무 그리워졌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대답했다. 나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찬반이나 진위를 따지지 않고 일단 들어두는 편이다. 절대 안한다고 했다가 하고 만 일들, 무조건 한다고 했다가 안하게 된 일들이 많지 않은가? 그럴 때마다 한번씩 이래서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고 또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았는지? 한국을 떠나 산지 3년차인 나도 어느 순간 타향살이 10년이 넘어가는 언니들에게 공감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그때가 오면 진짜 한국이 그리운지, 그립다면 뭐가 어떻게 그리운지 또 글로 써보도록 하겠다.

아직까지는 한국이 그립지 않냐는 질문에 그립지 않다는 대답이 먼저 떠오른다. 정말 그립지 않은 건지,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내 마음 속에 존재하지만 부러 건져 올려 확인하지 않는 건지 정확하게 분간하기는 어렵다. 떠나온 이유는 저마다 다양할 것이다. 근무 환경이나 사회 분위기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거나, 어떤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벗어나고 싶었거나, 여러 선택지를 두고 비교해서 더 나은 곳을 선택했거나. 차곡차곡 쌓이고 엉킨 이유들 사이에 살짝 끼어든 그리움이 마치 다시 돌아가겠다는 약속처럼 들리지 않을까 싶어서 애써 인정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그립다는 말에는 화자와 청자, 상황에 따라, 그립다는 말 속에 그 대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 떠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회한이 담기기도 해서 더 신중해진다.

그립다는 말과 생각 난다는 말이 비슷한 용례로 쓰이기도 하니, 그립다는 말 대신 생각날 때가 있다고 말해볼 수 있겠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이라는 문화적 테두리 안에 푹 담가져 살았던 사람이라서, 타지에 살면서 한국이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한국에 살면서 느꼈던 편리함이 있다. 한국과 외국을 비교할 때 자주 등장하는 그 편리함, 사람들의 노동을 갈아 넣어 만들어진 빠른 배송, 빠른 일 처리, 알잘딱깔센인 서비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 취향이나 습관적인 루틴을 쉽고 빠르게 충족시킬 수 있는 편리함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살면서 취향을 찾고, 습관을 쌓는다. 온라인 속에서 찾는 취향과 습관은 어디서든 쉽게 충족되지만 물성 가득한 세계와 연결된 취향과 습관은 장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국에서 스트레스 받을 때 동대문 엽기떡볶이를 주문해서 먹다 보면 땀이 쫄쫄 나면서 그 순간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젖은 앞머리를 머리띠로 올리고 누워있다가 샤워하고 나오면 '그래,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하며 복잡한 마음을 운동화 발끝으로 땅에 문지르듯 지워버렸다. 슬프거나 짜증날 때에도 고민할 필요 없이 즉각적으로 취하는 행동양식이 머리 속에 코드로 입력되어 있었다.

삼십 년 동안 한국에서 찾아내어 짜놓은 코드를 적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엽떡 착한 맛에 소시지 빼고 치즈 추가, 친구와 느끼한 크림 파스타에 생크림 잔뜩 올린 와플까지 먹고 나서 집에 가기 전에 꼭 들리던 포장마차 떡볶이, 망원동에 자주 가는 찻집, 혼자 앉아서 사케를 마실 수 있는 조용한 술집, 책을 사서 읽고 이야기 나누던 동네 책방. 취향을 만족하고 습관을 이행하며 나를 연명해온 코드들에 접속 불가 표시가 떴다.

비단 외국에서 사는 사람만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삶의 모양과 패턴이 바뀌는 순간마다 우리에게 깊숙하게 자리 잡았던 설계도로는 더 이상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속해있던 집단에서 나와 새로운 도전을 할 때나 누군가와 같이 살거나 떨어져 살기 시작할 때도 길을 잃고 또 다시 길을 찾아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 온다.

다시 경로 탐색을 시작했다. 월경 주기가 다가오면 바삭바삭하고 달콤한 바클라바를 사다 둔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옆구리에 고양이 사료를 끼고 산책을 나선다. 길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는 어느 드문 날에는 “프스프스”하고 튀르키예에서 통용되는 고양이를 부르는 신호를 보낸다.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이게 행복이지." 하고 새로운 코드를 입력한다.

또 한번 삶의 패턴이 바뀌면 그리워질 코드들을 헤아려 본다. 밤 열두 시에 나가서 먹는 코코레치(kokorec, 양곱창 케밥)가 생각난다. 등받이가 없는 낮은 스툴에 앉아서 무릎을 앞으로 접고 바게트빵에 야채와 잘게 썬 양곱창을 넣은 케밥을 먹으면 짙은 밤하늘이 얼굴로 흩뿌려져 송글송글 맺히다가 코로 쉬는 들숨에 한 움큼 딸려오는 듯 하다. 어딜 가든 이것만큼은 그리울 것 같다.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어도 그리워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덧붙이는 사담

영국에서 살았을 때 안개 가득한 새벽녘이면 남편은 이스탄불에서 안개가 자욱한 날 차이 한잔을 들고 밖을 바라보면서 저 멀리서부터 에잔* 소리가 가까워지는 걸 들었던 게 생각난다고 했어요. “아, 이스탄불 그립다.” 저는 아시아 마트에서 사온 햅쌀을 물에 씻었더니 영롱하게 반짝이는 걸 보며, “아, 한국 그립다.” 하고 말하곤 했어요(제 그리움에는 좀 낭만이 없는 듯 하지만 햅쌀을 씻으면 광택이 남다르답니다.). 그때마다 플랫메이트들은 아주 따스하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저희한테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돌아가고 싶다는 건 아니었는데, 그리움이 마치 배고픔, 졸림, 갈증처럼 꼭 해결해야만 하는 감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에잔(Ezan)*: 이슬람 사원 모스크에서 하루에 다섯번 기도를 알리는 소리

어디 그리움만 그럴까요? 애기가 귀엽다고 한 마디 하면 이제 애 낳을 때(?)인 거라고 말씀하는 어르신들, 외롭다고 말하면 애인 사귀면 해결된다고 말하던 사람들.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감정들이 그대로 숨쉴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길 소망해봅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오늘 아침 미역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렌틸 수프, 토마토 수프로는 해소할 수 없는 욕구가 있거든요. 평소 국물을 잘 먹지 않는데 오늘은 그릇을 양손으로 감싸서 남은 한 방울까지 다 마셨습니다. “하아”하고 긴 숨을 내쉬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아마 이건 그리움일 수 있겠네요. 

그리워질 코드들로 가득한 주말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