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의 베니수

글을 쓰고 춤을 춘다.

고양이 찰랑이와 함께 제주에 산다.

꿈과 산책에서 힘을 얻고

충동을 글감삼아 쓴다.

<베니수의 낭독 연재> 기획, 원고작성, 낭독

여느 아침의 나체

  목화솜 이불을 선물 받았다. 하얀 천에 넣어서 직접 만든 이불이었다. 전기장판에 가벼운 이불을 덮던 나는 하얀 이불의 묵직한 무게에 아늑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누군가는 옴짝달짝 할 수 없어 '벌 받는 것 같아.'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나는 몸을 잡아주는 느낌을 좋아했다. 나체로 엎드려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채 팔을 양옆으로 넓게 만들면 무게가 골고루 실린다. 어깨 아래부터 허벅지까지 빈틈없이 눌러주는 압박감이 좋다.

  여느 아침, 나체의 자연 상태로 깨어났다. 몸이 말랑하고 훈기가 돌았다. 자위를 하고 싶어졌다. 다리를 모으고 허리를 움직였다. 나의 몸이 악몽이나 추위로 딱딱하게 굳기보단 긴장이 풀려 푹 쉬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반가웠다. 클리토리스가 눌리는 압박감도 주어진다면 좋다. 좋은 수면과 자위 후에는 피가 돈다. 생기를 되찾는다. 개운해진다.

  손발이 본디 차가운 내 신체 특징은 좋은 지표로 바뀐다. 나는 5살 때부터 자위의 맛을 알았다. 언어화하기 전부터 직관적인 몸의 감각으로 알았지만 가족에게 들키지 말아야 하는 나만의 비밀 놀이로만 자위를 정의했다. 지금은 나의 자연스러운 성애의 일부이자 신체의 건강과 에너지의 순환을 바라보는 일로써 섹스와 자위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섹스는 지루한 것이었다. 오로지 삽입만이 - 고추, 손가락, 딜도 등등을 사용한 삽입 - 행위의 전부일 때. 예를 들어 친족 성폭행을 겪었을 때 실제 나의 감각은 수치심이나 두려움보다 지루함이 컸다. 저들이 할 줄 아는 건 그것 뿐이라는 것이, 내가 원하지 않은 상대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내 몸의 어디를 핥아주고 주무르고 감싸고 쓰다듬길 원하는지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1 대 1 독점 연애 관계일 때도 비슷한 상황은 있기 마련이었다. 삽입을 하지 않으면 실망하는 상대 기분 맞춰주기와 같은 흔한 상황이다. 피곤하다며 천장 아래 얼굴을 밀어 치우길 몇 번이었던가. 폐쇄적이던 연애 관계나 원가족과의 인연을 끊고 제주에 와서는, 오로지 행위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는지 시도해보았다.

  여름밤의 제주, 함덕의 스테핑스톤 페스티벌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머리끝이 노랗고 파마 머리를 한 그는 어깨가 가지런하고 팔로 내려가는 부분이 동그랗게 내려가다 잔근육의 굴곡 선을 가졌다. 불그스름한 네온사인 빛을 피부로 튕기며 해변에 앉아 맥주를 홀짝거렸다. 택시를 타고 그를 집으로 데려왔다. 처음에는 고양이 이름을 묻거나 낯선 집에 와 어색해 하는 듯 싶더니 침대에 눕고서는 그런 기색이 삭 사라졌다.

  가벼운 힘으로 그가 나를 밀었다. 나는 눕지 않고 무릎을 침대에 세워 상체를 꼿꼿하게 세웠다. 그의 손이 배꼽에서 클리토리스로 내려갔고 중지로 눌렀다. 좌우로 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그가 머리를 내 가슴에 빈틈없이 붙였다.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클리토리스에서 느껴지던 간질거림은 바뀌어 갔다. 머리맡에 켜놓았던 선라이즈 조명의 형광 오렌지 빛처럼 톡톡 쏘는 진한 쾌감이었다. 그때 한숨처럼 신음이 흘렀다. 나의 등을 쓸어내리는 다른 손과 함께 오르가즘이 다가왔다. 긴장이 풀린 나의 몸을 그가 밀어서 눕혔다. 그 후 삽입 행위를 했지만 나는 축축하게 비비던 감각만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겨울철 얇게 언 연못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은 맥 없는 충격이었다. 돌이 가라 앉으면, 깊은 곳에서 기포가 일듯이 다른 감정이 일어났다. 집에서 그 사람을 내보내고 반년이 지나도록 이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질투였다. 지금까지는 가질 수 없거나 쉽게 낙관만 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질투해왔다. 가령 중1 때 엄마와 사별했다는 경험이 있는 나는, 도서관에서 4시의 오후 햇빛을 받으며 손잡고 다니는 어린 여자아이와 젊은 엄마를 볼 때 질투했다. - 넌 엄마랑 도서관 갈 수 있어서 좋겠다 – 태어날 때부터 익숙하고 아직 의심할 새 없이 함께 할 체온이 부러웠다. 매일 같이 엉켜있던 우울과 분노를 시로 써 선생님에게 보여주자 더 깊고 섬세한 시를 쓰던 친구의 글을 읽고 오라고 했던 날도. - 그 후로 한동안 시를 쓰지 않았다. - 친구의 집에는 벽 하나를 차지하는 책장과 책이 넘쳐났다. 그 책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책을 꺼내는 친구의 몸짓이 부러웠다. 감히 최고와 최상을 원한 적 없다. 하지만 끈질기게 붙어 오는 질투를 받아들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쾌감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몸은 폭력으로 침범할 수 있지만 내가 회복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비비기로 오르가즘을 만날 수 있었지만 단순히 손기술이 없다. 팔굽혀펴기를 해봤지만 금방 질렸다. 비비며 자위를 해보던 나는 이불을 걷고 상체를 일으켜 물을 마셨다. 급하게 마시느라 물이 넘쳐 턱을 타고 흘렀다. 손등으로 닦고 손으로 다시 몸 이곳저곳을 더듬어보아도 별 느낌이 없었다. 이런 건 예상하지 못했다. 타인의 기술로 내 몸을 새롭게 알았다는 사실을 마주하기 어려웠다. 혹시 쾌감도, 몸의 감각도 선택할 수 없던 것이라면? 앞으로도 바꿀 수 없다면? 끔찍했다.

  곧 나는 변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일전에 겪은 충격과 혼란 때문만은 아니다. 발과 다리를 모아 허벅지에 힘을 주는 자세는 허리에 부담을 준다. 내 자위는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숨기기 위해 이불을 덮고 꼼지락거리던 움직임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허리 디스크가 있었다가 회복했지만 앞으로도 나는 만성적인 허리 통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자위 후에 허리가 시큰해지는 삶은 바꿀 수 있다. 요가 자세 중 발바닥을 붙이고 다리를 넓게 벌리는 나비 자세가 허리 통증에 좋으니, 그 사이에 손이나 우머나이저를 두면 좋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거나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여느 아침, 나는 다시 나체일 것이다. 목화솜 이불에 포근히 눌려 있다 눅진해진 몸으로 일어날 것이다. 

2023.11.27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