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튀르키예에 놀러 온다고 하면 가장 먼저 뭘 먹일지 정리한다. 짧고 귀한 휴가 기간에 맛있는 음식을 최대한 다양하게 먹이고 싶어서 식당 휴무와 붐비는 시간을 고려하며 스케줄을 짠다. 식당을 찾기 까다롭거나 우리가 더 맛있게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는 메뉴는 직접 요리해줄 목록에 적어 둔다.

나와 남편이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식당 “하란Harran”은 남편이 지금 키의 절반도 되지 않을 만큼 작고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단골 맛집이다. 꼬치에 고기와 채소를 끼워서 구운 시시케밥(şiş kebabı), 얇은 도우에 고기와 향신료를 발라 피자처럼 먹는 라흐마준(lahmacun) 등 메인 메뉴도 끝내 주지만 우리는 호박 디저트를 최고로 꼽는다. 호박 위에 카이막(kaymak, 우유로 만든 크림)과 견과류를 올린 디저트인데, 여태까지 먹어 본 음식 중 카이막이 역할을 가장 제대로 하는 요리라고 생각한다.

친구를 데리고 식당으로 가면서 호박 디저트를 꼭 언급한다. 호들갑을 떨며 “제발, 오늘 호박 디저트를 먹일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외친다. 유난스럽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하란에서는 아무 때나 호박 디저트를 먹을 수 없다. 요리에 필요한 채소들을 식당 옆에 있는 넓은 밭에서 키워서 쓰기 때문에, 하란의 밭에 호박이 여물지 않으면 호박 디저트도 없다. 식당에 자리 잡고 주문을 받으러 온 종업원에게 제일 먼저 질문한다.

“혹시 오늘 호박 디저트 있어요?”

호박이 맛있게 익기만 기다리던 우리가 처음으로 직접 호박 디저트를 만들었다.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는 걸 좋아하면서도 이 디저트만큼은 만들 생각을 못했었다. 커다란 호박을 사서 전부 디저트로 만들자니 양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다른 호박 요리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사먹는 게 더 맛있을 테니 굳이 품을 들여 도전해볼 가치를 못 느꼈다.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 들어온다는 관용어구처럼 기회가 찾아왔다. 살이 두껍고 실한 노란 호박 하나가 외삼촌 농장에서 트럭에 실려서 시댁에 들어온 것이다. 다들 호박으로 뭘 어떻게 해먹을지 몰라서 이주 넘게 시댁 발코니에 호박을 방치해 두었다. 외삼촌이 땡볕에서 고생하며 힘들게 키운 호박이니 이 기회에 호박 디저트를 한번 만들어 보자며 소분한 호박이 담긴 봉지를 집으로 가져왔다.  

누가 어떻게 키웠는지 그려지는 채소를 받으면 대충 요리해서 끼니를 해치우는 대신 부엌에서 정성스럽게 요리하고 싶어진다. 매일 아침 호미를 들고 밭에 가시던 할머니를 기억하는 농부의 손녀가 익힌 마음이다. 농부의 손녀라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농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그저 할머니가 오일장에 팔고 남은 채소로 꽉꽉 채운 소포를 받아 먹고 자랐다. 비 온 다음 날 대나무 숲에서 캔 죽순, 껍질을 벗겨 질기지 않은 머위대, 반으로 자르면 단면에 채즙이 이슬처럼 송글송글 맺히는 애호박까지. 채소들이 품은 노고와 이야기들이 내 피부에 스며들고 손톱에 낀 듯 남아 더 들여다 보고 싶어졌다.

지름이 길고 높이가 낮은 냄비에 숭덩숭덩 썬 호박을 깔고 그 위에 설탕 두 컵을 부었다. 설탕을 빨리 녹이려고 뒤적거리지 않고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 하루를 기다렸다. 다음날 냄비를 꺼내 끓이면 보글보글 거품이 피고 지고 뜨거운 김이 올라와 얼굴에 촉촉하게 물기가 맺혔다. 물이 졸아들면 물을 더 부어가며 호박의 외벽이 허물어질 때까지 바닥에 눌러 붙지 않게 천천히 저었다. 아무런 부대낌이나 위해도 가하지 않겠다는 듯 뭉개지는 채소는 자연스레 서로 맛을 섞는다.

집안이 호박 냄새로 가득 차며 후끈해지고 창문이 달콤한 설탕 막으로 얇게 감싼 호박처럼 흐려졌다. 시간을 들여 요리하다 보면 나를 잘 돌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돌보는 흉내를 내는지, 진짜 돌보는 건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웃다 보면 뇌에서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어 행복해진다는 말처럼, 돌보는 시늉만 해도 나를 돌보고 있다고, 돌봄 받고 있다고 믿게 되는 순간이 온다. 불을 끄고 끈적이는 시럽으로 에워싸인 호박이 머금은 열기를 뱉고 먹기 좋은 상태로 진정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린다. 이 위에 카이막 한 덩어리를 올리고 호두를 잘게 부셔서 뿌리면 호박 디저트가 완성된다.

밀도 있고 고소하지만 잘 들리지 않는 귓속말처럼 은근한 맛을 지닌 카이막과 설탕에 절이고 끓여서 강렬하게 달큰해진 부드러운 호박이 만나 풍성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한 목소리를 낸다. 호박이 포크로 깨끗하게 절단되었다면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더 잘 만들기로 한다. 포크질에 호박이 부드럽게 주저앉으며 섬유질의 결이 유지된 채 옆으로 퍼진다. 그 틈새를 호두 조각들이 채워준다.

먹이고 싶었던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떠나는 친구들에게 체리가 맛있는 초여름에 또 놀러 오라고, 가을에 와서 함씨(Hamsi, 영어로는 유럽 멸치로 불린다.)를 먹자고 말하며 배웅했었다. 이제 호박이 맛있는 계절에 놀러 오면 호박디저트를 만들어 원없이 먹게 해주겠다고 덧붙일 수 있겠다. 튀르키예가 아닌 다른 나라에 살게 되더라도 호박 디저트를 대접할 수 있을 것이다. 환대하는 계절을 모아 촘촘하게 이어 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