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원에서 일하고 있다. 강사로 채용되었고, 일용직으로 계약해 프리랜서 노동자로 등록되었다. 면접을 볼 때 인권 활동을 한다고 말했으며 무슨 활동이냐는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퀴어 인권 활동이요, 라고 하기에는 내 주변의 관계가 모두 아웃팅 될 위험도 있거니와 그들의 의견 차이에 따라 취업이 결정된다는 사실이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대표는 이것저것 물었다. 나는 요리조리 피했다. 하지만 꼿꼿하게 앉아 눈을 마주치며 차분하게 말한 것이 좋은 선생님이 될 것 같다고 하더니 채용했다.

  좋은 선생님 하면 그 사람이 떠오른다. 코가 크고 입이 다부진 남자 선생. 사회와 과학을 가르치고 공군 시절 사람이 떨어져 형체도 남지 않았다고 했던 사람. 나는 그에게 권력이 있음을 알았다. 그는 아이들이 자신의 "수업 시작한다"라는 말 한마디에 우르르 자리에 앉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알랑방구를 뀌고 싶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영특한 흉내를 내며 질문을 하러 갔다. 그는 색약이 있었다. 과학 학습지에 나오는 색을 보여주며, "그럼 이 글자도 안 보여요?"라고 말했다. 그는 배와 목에 힘을 주며 건물에 메아리가 치도록 말했다.

  "너 정말 싸가지 없구나!"

  싸가지 없는 아이가 된다는 건 신나는 일이었다. 그와 친해질수만 있다면. 권력을 가진 자의 총애를 받을 수 있다면. 하지만 나의 무지한 말은 그가 겪었던 폭력을 떠오르게 하는 말이고 가까워지기는 커녕 멀어지는 신호탄 불빛이었다. 미움을 받으며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권력을 가지고 큰 목소리로 지배하는 사람은,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로 남아야 했다. 누가 더 심했느냐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지 않지만 사랑 받고 싶어서 안달났던 내가 초라해지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지읒이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저희 누나가 그러는데 쌤 영어 못한대요. 쌤은 어디 대학 나왔어요? 쌤이 하는 게 영어 수업 맞아요?" 예상외로 화가 나지 않았다. 원장과 대표와 부원장 세 명과 자료를 정리하며 지읒이 얘기가 오갈 때가 더 당황스러웠다. 싸가지 없다라고 출발해 콱 쥐어 박아야 정신 차릴까요 라는 코너를 돌아 모부에게 말해서 학원 그만 보내라고 하는 마지막까지. 나도 추방당할 수 있었구나. 미움을 받는다는 건 쫓겨나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알자니 식은땀이 났다.

  그 날은 국어 담당 선생님이 휴가를 내서 초등 국어 수업을 하루 맡아서 진행했다. 각자 문제집을 풀다가 질문을 하면 가르치는 방식으로, 두 세명이 한꺼번에 손을 들고 선생님을 부르면 기다리라고 해야했다. 모두가 같은 칠판을 보는 영어 수업과 달리 서로 먼저 선생님을 부르는 경쟁구도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글쓴이의 마음 짐작하기' 수업 시간에 내가 들어가게 되었는데, 참 자신 없는 분야였다. 역지사지 이기 때문이다. 

  질문지는 묻는다.

  축구공을 주우러 들어간 유리에게 상추가 밟혔어요. 상추의 마음은 어떨까요?

  여기에 보기도 없이 어린이는 감정 단어를 적어야 한다. 기분이 좋아요, 안 좋아요는 안 된다. 속상해요, 미안해요, 기뻐요, 신나요 등등의 구체적인 단어를 적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내 일도 아닌 일에 감응하면서 말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나는 잠시 지읒이 앞에서 영어도 못하고 국어도 못하는 선생님이 된다. 말이 없어지자 지읒이는 다른 어린이에게 "너는 그거밖에 못했냐?"고 시비를 걸며 자극했다. 다급해진 나는 지읒이를 두 번 불렀다. 지읒아 지읒아. 심드렁하게 보는 눈을 보고 말했다.

  "만일 선생님이 네 가방에서 젤리를 꺼내서 콱콱 밟으면 어떨 것 같아?"

  지읒이는 뭘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 말했다. 미안하겠죠. 

  아차 - 지읒이는 역지사지에 너무도 탁월해서 젤리도, 자신도 아닌 눈 앞의 선생님의 기분을 말했다. 나는 지우개를 손에 들고 젤리인 척 꾹꾹 누르며 다시 물었다. 선생님이 니 젤리 이렇게 만들어버릴거야. 그럼 젤리 기분 어떨 것 같애? 

  아, 쌤, 왜그래요. 지읒이가 질색하며 지우개를 가져갔다. 나는 손을 문지르며 그게 상추의 기분일거라고 말했다. 지읒이는 '속상하고 짜증나고 불편하고 화가 나서 기분이 나빴다.'라고 적었다. 만족스러웠다.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도 치고 하트도 쳤다. 그리고 다른 지우개를 들고 꾹꾹 누르면서 지읒이를 보고 음흉하게 후후 웃었다. 지읒이가 사뭇 진지해져서 중얼거렸다. 젤리 숨겨야지... 고사리 같은 손가락 사이를 말아쥐고 지우개를 손 안에 숨겼다. 

  지읒이가 나갈 때, 나는 지읒이를 괜히 오래 붙잡고 물었다. 오늘 뭘 배웠지요? 지읒이는 빨리 젤리도 숨겨야 하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싶어서 안절부절 못하며 말했다.

  "짐짝! 아니, 짐작하기요!"

  한 번 더 못 들은 척 물어보고 싶었지만 복수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보내주었다. 곧 영어 수업에서도 만나니깐 뭐. R 발음이 얼마나 어려운지 몸소 느끼게 해주마.

  10분의 쉬는 시간. 나는 하얀 칠판에 검은 마카를 들고 '짐짝'을 적었다. 손가락으로 지우며 지읒을 하나 덜어냈다. '짐작'이 되었다. 짐짝처럼 여겨지던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고 상상하며. 떠나게 된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하며.   

  

  

2023.12.25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