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면 매일 다이어리를 쓴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비워 두었던 하루를 놓치지 않고 채운다. 한 해의 마지막 달만큼은 열심히 살아내고 싶은 걸까? 아무리 추워도 밖으로 나가 걸으며 겨울 냄새를 맡겠다는 듯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찬 공기가 코를 지나 몸속으로 훅 들어가면 받았으니 뭐라도 내줘야 할 것처럼 “곧 크리스마스다!”하고 소리 내본다.

추위에 잘 버티는 건 재주나 재능이 아니라 훈련을 거친 결과물인 것 같다. 아직 겨울에 미숙한 건지 계절에 한 번은 호되게 아파서 침대로 기어들어 가 웅크린 채 땀 흘리며 열이 내리길 기다린다. 혹독한 계절을 잘 다독이며 견뎌보라고 유독 겨울에 기념일들을 깔아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날씨가 살짝 추워지는 11월 코 끝에서 할로윈으로 시작해 크리스마스로 절정을 달리고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날 “해피 뉴이어!”를 외치며 겨울을 달랜다. 예쁘지, 착하지, 겨울.

우리 모두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을 교육받은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크리스마스에는 성탄 분위기가 흘러넘치는 곳을 찾아가 누군가와 함께 보내야 할 것만 같은 불안한 설렘을 나만 느낀 건 아닐 것이다. 약속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낼 때면 겨울을 혼자 만나기 두려운 건지 씁쓸하면서도 어리둥절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럼에도 성실하게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크리스마스 당일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알면서도 그 사실만큼은 절대 외우지 않고 냉소적으로 굴지 않겠다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너는 겨울을 대표하니까 어서 나를 행복하고 들뜨게 해 주렴, 하고 곱게 만지던 크리스마스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로 왔다. 튀르키예에서 크리스마스는 빨간날이 아니다. 이슬람 국가는 아니지만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 신자이기에 이슬람 명절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그래서 12월이 되어도 거리에서 반짝이는 조명, 빨강, 초록, 노랑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장식들과 트리를 보기 드물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사람들은 여느 월요일처럼 출근하고 학교에 갈 것이다. 튀르키예에 와서 겪은 가장 큰 문화 충격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나라에서 오셨습니까? 그곳에서는 무얼 하며 보내셨나요? 하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딱히 기억나는 건 없지만 크리스마스만 바라보며 버티던 날들을 떠올리면 서운했다. 첫해에는 우리끼리라도 즐겨 보겠다고 작은 트리와 장식을 사고 눈사람 모양 조명 줄을 두르고 밤마다 켜 두었다. 평소에 목이 간지러워서 안 입는 빨간 스웨터도 꺼내 입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옛날에 먹던 떡볶이나 간식이 생각나서 비슷한 걸 사 먹었는데 그 맛이 아닐 때, 아닌 건 알겠는데 어떻게 재현할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할까? 다음 해부터는 까먹고 있다가 당일에 휴대폰 화면을 보고 크리스마스라는 걸 깨달았다.

여느 아침처럼 고양이들이 밥 달라고 울면서 다리 사이를 지나갔고 고양이 꼬리를 밟지 않으려고 발을 바닥에 붙이고 밀어가며 부엌으로 나왔다. 밥을 주고 소파에 앉아 어떻게 하면 크리스마스를 되찾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식사를 마친 둘째 고양이 꿀떡이가 무릎 위로 올라와 침이 가득 묻은 볼을 내 얼굴에, 손에 비벼댔다. 그러다 잠시 동작을 멈추고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는 몸을 던져 누웠다. 잠깐 딴생각하다 행여 받아내지 못하더라도 꿀떡이는 포기하는 법이 없다. 일어나서 이번에는 잘 받아달라는 듯 바라보고 다시 몸을 던진다. 나를 이렇게까지 믿어 주다니. 눈을 감고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니, 크리스마스를 사람들과 즐길 수 없다면 고양이들이랑 캣스마스(Cat’s Mas)를 즐겨 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크리스마스가 없는 도시에서도 장사 대목을 놓치지 않는 클럽, 레스토랑, 바에 가면 즐기러 온 커플 손님들과 함께 옅게나마 분위기를 즐길 수 있겠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낄 테니까.

빨간날이니 소비하며 노세요, 하고 국가가 정해놓지 않아도 우리가 빈자리를 채우면 되는 거 아닌가? 똑같이 메울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들로 만들어볼 수 있겠다. 튀르키예에는 캣스마스를 함께 즐길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 많다. 선물을 받으면 즐거워하는 건 인간만이 아니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영혼들은 아닌 척하면서도 우리가 즐거운지 슬픈지 기민하게 느낄 줄 안다. 우리 집 우유와 꿀떡이,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아기에서 청년이 된 라운디와 반디티, 새로 온 치즈, 오며 가며 인사하던 오리온과 프린스. 이름을 붙인 고양이들부터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을 아는 고양이들, 오늘 처음 만난 고양이들과 지난날 마주쳤던 고양이들,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만날지 모르는 고양이들에게도 선물 같은 날을 줄 수 있다면.

그렇게 시작해서 올해로 두 번째 캣스마스를 맞이한다. 준비할 음식은 작년과 동일하게 칠면조 가슴살 닭 간 수프이다. 칠면조 고기를 잘게 썰어 닭 간과 함께 끓이다가 오트밀을 섞으면 완성이다. 통에 담고 국자와 그릇을 챙긴다. 아파트 문을 나서면 제일 먼저 갈색 고양이 라운디와 까만 고양이 반디티가 달려온다. 한 국자씩 그릇에 퍼 담아 주며 많이 먹으라고 쓰다듬어준다. 반디티는 늘 그랬듯 자기 몫으로 놓인 음식을 먹다 말고 라운디에게 돌진하고, 우리는 반디티의 그릇을 톡톡 건드리며 “여기 네 꺼 먹어!” 하고 알려준다. 고양이들이 분명 좋아할 테지만 한 번도 맛본 적 없을지 모를 음식을 나눠 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데, 밥을 다 먹은 라운디가 놀아달라고 보챈다. 아파트 단지에 새로 온 치즈가 달려온다. 우리를 보면 신나서 달리는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는 치즈는 음식을 담아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국자를 머리로 들이받는다.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프스프스*, 캣스마스 징글벨 캐럴을 부르면 새로운 고양이들이 다가온다. 가끔 본 적 있던 브리티시 숏헤어, 마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골격이 큰 고등어, 개들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가 내려다보는 털이 긴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음식을 건넨다.

레깅스 위에 가을에 떠 놓은 두꺼운 털 양말을 신고 오래 걸어도 발이 시리지 않게 워커 부츠를 신고 더 오래, 더 멀리 산책을 나설 준비를 할 것이다. 딱딱하고 무거워진 발로 고양이 꼬리를 밟지 않으려고 뒤뚱거리며 걷더라도, 걷다가 피곤해져서 돌아오는 길에 벤치에 자주 앉아 쉬어야 하더라도, 그날만큼은 멀리 있는 고양이들에게까지 닿고 싶다.

마지막 국물까지 싹싹 긁어주고 나서 빈 그릇을 들고 소나무 아래 모여든 고양이들을 오너먼트 삼아 꾸며진 캣스마스 트리를 가만히 바라본다. 밥을 먹느라 웅크린 모습이 꼭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들 같다가, 작년에도, 올해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느낄 따뜻함을 더듬어보면 그들이 내 산타인 것만 같다.

냐옹, 메리 캣스마스!

*프스프스: 튀르키예 사는 고양이들을 부르는 소리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해보니 고양이들이 다가오지 않더군요. "밥 먹자!" 또는 "식사하셔요." 하는 의미이니 줄 음식이 없으면서 부르시면 곤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