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 한번 내뱉고, 콧물 한번 마신다. 목에 남은 이물감이 사라지지 않아서 기침을 시원찮게 연달아 토해낸다. 콧물을 들이마시느라 배가 불렀다. 매일 저녁 남편의 어깨에 다 쓴 수건처럼 몸을 늘어트리면 남편이 호랑이 연고와 흡사한 냄새가 나는 연고를 내 등과 발바닥에 발라주었다. 아침마다 면역력을 높이는 영양제와 비타민 D, 쓴맛을 애써 애매한 단맛으로 감춘 목감기약을 챙겨 먹었다. 일주일을 앓고 열이 내렸고 오랜만에 눈 앞이 선명해졌다. 평소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다하고 따뜻한 국화차를 마시며 밀린 글을 쓰고 있었다.

타자기 모양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 들리던 발코니에서, 스피치가 시작되기 직전의 연회장처럼 갑작스럽고 기이한 침묵을 느꼈다. 평온함이 아니었다. 커다란 건물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온 신경이 벽에 집중되었다. 눈 앞에 있는 공사장에서 내는 소음과 진동일까? 분명 달랐다. 소주병을 돌리면 안에서 거세게 감기는 거품 소용돌이처럼 의자에 앉아 있는 내 몸은 그대로 인데 내장만 휘몰아치는 기분. 지진이 왔다.

진동이 멈추자 마자 폰이 울렸다. 외출한 남편에게서 온 전화였다. 지진이 났으니 세탁기 옆으로 가서 앉아 있으라고 했다. 더 심각한 지진이 오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오라고 덧붙였다. 화장실로 가서 떨어지면 위험할 수 있는 물건들을 옆으로 밀었다. 빨래하려고 빨래 통에 넣어둔 담요를 꺼내 바닥에 깔고 세탁기 앞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아픈 몸을 쥐어 짜내느라 다른 생각을 할 새도 없었다.

지진을 겪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세번째다. 여태까지는 깜깜한 밤에 지진을 맞이했다. 무언가 강력한 힘이 침대 안에서 뻗어 나와서 나를 흔들며 끌고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자다가 지진을 겪어서 무서운 줄 알았는데, 이번엔 멀쩡한 대낮인데도 혼자라서 그런지 훨씬 겁이 났다. 아직 몸에 남아 있는 감기 기운을 숙주 삼아 걱정과 불안이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아, 힘들다. 움직일 때마다 뼈가 쑤시고, 뇌가 콧물로 가득 찬 것처럼 무겁고 멍하다. 그런데 나 고양이 둘을 둔 보호자잖아. 큰애 6.6kg에 작은애 5.8kg, 합쳐서 12kg이 넘는 고양이를 양팔에 한 마리씩 끼고 어떻게 대피하지? 계단 한 층만 올라도 숨 찰 정도로 요즘 체력이 바닥인데 할 수 있을까? 운동 시작하겠다고 말만 하고 왜 한 번을 안 했지? 과거의 나 정말 짜증나고 질린다.

자기 혐오는 자기 검열과 의심으로 세를 확장했다. 고양이들 보호자라는 사람이 혼자 살겠다고 새끼들을 두고 탈출하면 어떡하지? 진짜 자식이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리고 나갔겠지. 나는 재난 상황에서 사랑하는 존재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을까?

남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제 괜찮을 거 같아. 여진이 올 수 있는데 아까 왔던 것보다 안 심할 거야. 혹시 심각하면 먼저 나와. 혼자 고양이 두 마리를 다 데려올 생각하지 말고. 고양이들은 유연해서 생각보다 잘 숨을 수 있으니, 기다렸다가 우리 같이 구하러 가자.”

거실로 나오니 고양이들이 배를 보이며 소파에 누워 있었다. 지난번 지진이 났을 때 토했던 첫째 우유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먀~?”하고 말을 걸었다. 머리를 쓰다듬자 우유는 눈을 감았고, 앞다리를 주무르니 기지개를 쭉 폈다. 평온해 보였다.

힘이 있다고 반드시 다 지킬 수 있다는 결론을 보장할 순 없을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힘이 부족한 줄 알았는데 지켜낼 수도 있다. 나에게 있는지 없는지 모를 힘을 뒤지며 초조해 하는 대신 나는 꼭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을 지키고 싶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믿을 구석을 찾는다. 손에 닿지 않는 고양이들을 구하겠다고 허둥지둥하다가 나도 탈출하지 못한다면 그거야 말로 최악의 결과이다. 혼자 먼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해도 고양이들이 조금만 버텨줄 거라 믿고 최적의 순간에 다시 구하러 가면 된다. 고양이들을 사랑하고 고양이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으면서도, 내 행동을 되돌아보며 마음을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기였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했을 텐데 내 마음이 부족했던 건 아닌가 하며 죄책감 갖지 않기로 한다. 아기들은 가만히 있겠지만 고양이들은 우리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망치고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버릴 가능성이 높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모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믿음에는 영양분이 필요하다. 일이 닥쳤을 때 당황해서 까먹지 않도록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로 익혀 두면 든든해진다. 침대 옆에 둔 재난 키트와 생수병, 이불 챙기기, 안전지대로 이동, 목과 배를 보호하기. 가까이에 있는 고양이를 잡아채기, 멀리 있을 땐 간식으로 부르기. 고양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로봇처럼 해야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몸에 새긴다.  

밖에서도 거름을 얻는다. 올해 2월 튀르키예 중부와 남부 가지안테프에서 연달아 지진이 일어났을 때를 기억한다. 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도시들이 사라졌다. 만나면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를 건네고 항상 잘 지낸다고 대답하던 사람들이 그 시기에는 다들 잘 지내지 못한다고 대답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은 구호 물자를 기부하기 위해 시청 앞 광장에 모여들었고, 물품을 분류하고 포장하는 일을 돕는 봉사자들이 넘쳐났다. 뿌연 흙먼지와 부서진 건물 사이에서 나보다 우리 고양이 칠렉(cilek, 딸기)를 먼저 구조해달라고 말하던 여성의 울음과 안도를 봤다. 구조될 때까지 반려새를 손에 꼭 쥐고 있다가 함께 나온 남성의 벅찬 눈물과 옅은 미소도 봤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불, 옷, 담요, 목도리, 장갑, 음식, 생리대를 보내고 사람이 동물을 구하고 챙겨 먹였다. 나 자신을 믿기 힘들 때에는 지나가면서 봤을 법한 친숙한 얼굴을 한 사람들을 보고 듣는다.

열기를 잃은 시멘트 벽으로 불안이 한기처럼 스며 들어오는 밤이면, 누군가를 살려냈다는 전설과 영웅 설화를 이불처럼 꼭 끌어 안고 온기를 몸에 묻힌다. 그건 전설이 아니다. 가까이에서 들었던 서로를 챙겨낸 일상의 이야기들이다. 나도 해내겠다는 용기를 곱게 개어서 베고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