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하얗고 은빛 실이야...하얀 오전의 잔디야.."

  팔팔 끓는 물 소리가 전기 포트의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 앞에서 설거지 그릇을 정리하며 나는 흥얼거렸다. 평생 노래를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가사가 술술 쓰였던 노래였다. 멜로디는 되는대로다. 허밍이 기타 대신이고 주먹이 드럼 대신이다.

  탁, 전기 포트의 빨간 불이 꺼졌다. 보온 물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부어 넣고 살살 누르며 수증기를 빼냈다. 입구를 단단히 잠그고 거꾸로 들어 물이 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발치를 봤다. 함께 사는 고양이가 올려다보고 있었다. 녹색의 눈. 회색과 하얀색이 섞인 은빛 털의 고양이. 함께 산지 어느덧 2년이다. 나는 고양이를 보며 율동을 하듯이 두 주먹을 쥐고 다음 소절을 불렀다.

"찰랑, 찰랑!"

  찰랑이가 에우웅하고 답하고 고개를 돌렸다. 정리하던 그릇 중에 찰랑이의 간식 그릇이 있다. 쟤가 천을 열고 저기(부엌)에 들어가서 달그락거리면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 나오는군! 흥, 이쯤이야. 쉽게 알 수 있지. 라고 손으로 그린 고양이 그림이 말하는 듯 상상하고 있으면 다시 아웅! 하며 말을 건다. 나는 간식 서랍을 열고 손바닥만한 간식의 껍질을 깐다. 숟가락으로 눌러 으깰 때부터 더 우렁차고 걸걸한 목소리가 부엌에 울린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손을 빠르게 놀린다. 

  챱챱 하는 소리가 숙인 머리 아래에서 비져나온다. 보온 물주머니를 끌어 안고 식탁 앞 의자에 앉아서 한 없이 바라보았다. 잘 먹는구나. 정말 다행이다. 나는 찰랑이가 잘 먹을 때만큼은 무겁던 모든 근심걱정이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아진다. 찰랑이는 구내염이 있다.

  고양이 구내염은 인간의 구내염과 달리 만성 질병이다. 잇몸에 있는 치태에 과민하게 반응하여 출혈은 물론 목과 코 안이 붓고 침 한 번 삼키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구내염이 있는 고양이는 몸을 혀로 구석구석 닦아 깨끗하게 하는 습성이 있지만, 침이 찐득해져 몸을 닦기 쉽지 않다. 앞발은 점점 침으로 엉켜 까맣게 변하고 밥을 먹지 못해 말라간다. 내가 찰랑이를 길에서 만났던 첫 날도 그랬다. 등뼈와 갈비뼈가 엉킨 털 사이로 앙상히 보였고 걸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라 있었다. 

  하지만 찰랑이는 걸어와 다가왔다. 앉아서도 비틀거렸지만 숨을 몰아쉬며 참치 캔을 따서 햇반 그릇에 담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다급해졌다. 손이 닿는 거리까지 거리낌 없이 다가와서 당연한 듯 바라보는 저 녹색 눈! 햇반 그릇을 밀어서 주니 입을 크게 벌려 와앙 한 입 먹었다. 그리고 곧장 입을 부르르 떨며 앞발로 입을 때렸다. 너무 아파서 낚시 바늘이라도 걸려 빼려고 하는 것처럼 앞발로 털어내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켄넬을 샀다. 어떻게 잡아 구조해야하는지도 모르면서. 찰랑이는 나와 만난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순순히 켄넬 안으로 들어갔다.  

"푸석했던 고양이...부드러워진 고양이..."

  만족스러운 식사였다보다. 내가 노래를 흥얼거리는 동안 말끔히 그릇을 비우고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오늘은 입 주변에 피도, 침도 묻어 있지 않다. 앞발을 핥고 그 앞발로 얼굴을 문질러 닦던 찰랑이가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평소 고양이는 소화기관이 쉬지만 먹으면 함께 움직인다. 그래서 밥을 먹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나는 여전히 보온 물주머니를 껴안으며 멍하니 보다가 퍼뜩 알아차렸다. 어제 응가 눈 거 안 치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찰랑이가 모래 위에 엉거주춤 있다가 오줌을 누고 모래를 오랫동안 파헤쳤다. 

  난방텐트가 쳐져 있는 침대 앞에서 찰랑이가 다시 나를 돌아봤다. 열어달라는 것이다. 찰랑이는 내가 난방텐트를 열면 올라갈 것이고 나도 따라 들어가 몸을 뉘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아침으로, 그 전에 잠을 잘 것이다.

  나는 지퍼를 열면서 찰랑이의 첫 수술을 떠올린다. 고양이 구내염은 이빨을 모두 뽑는 전발치 수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이빨에 있는 치태 자체가 쌓이지 않기 때문인데, 만성 질병이라 스테로이드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지라 약이라도 줄여야한다. 찰랑이에게 약을 먹이는 것도 처음이라 덤벙거렸지만, 밥도 강급해야 했다. 집은 안겨서 억지로 약과 밥을 먹어야 하는 찰랑이가 싫다고 고함치며 하악거리는 진동이 몸을 타고 느껴졌다. 그러다 겨우 모금을 진행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모금액이 모자라 부분 발치만 해야 했지만,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었다.

  입원을 시키고 온 직후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덩그러니 놓여진 그릇들, 약 봉지들. 나는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났다. 그리고 훌쩍 거리면서 침대에 누웠다.

"너무 조용해...."

  그때부터였을까. 언젠가 다시 찰랑이가 다시 입원해야 할 일이 생기면 부를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멀리 있어도, 혹여 우리가 죽어 헤어져도 너를 잊지 않을 노래가. 두 주먹을 꼭 쥐고 율동을 하면서 네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나온 것이. 

  텐트 안에 반듯이 누운 내 배 위에 찰랑이가 올라왔다. 엉덩이를 들이대다니. 이럴 땐 동물권이고 인간도 동물이고 뭐고 찰랑이가 고양이라 더 다행이다. 어느 인간이 내 얼굴에 궁둥이를 들이대다니... 때려달라 할 때말고는 어림도 없다. 꼬리로 내 얼굴을 때리는 건 이 고양이이지만. 아무튼 나는 팔을 쭉 뻗어 허리께에 있는 찰랑이의 수염, 코, 턱, 볼에 손을 올린다. 비비는 스킬이 부족해 자위를 할 때는 만족하기 어려운 손이지만, 타자를 치느라 야무져진 손 끝은 찰랑이가 만족할만 갈고리빗이 된다. 찰랑이의 몸 안쪽부터 내 발끝까지 그르릉거리는 파동이 울렸다. 메리 올리버의 시가 떠올랐다.